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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SIE'S BLOG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본문
내가 죽어라 공부할 때 이경규는 죽어라 노는 친구였다. 커서 어떤 사람이 되려나 궁금했는데 <몰래카메라>로 대한민국을 웃게 만들더니, <양심냉장고>로 대한민국의 양심을 지키고, 45년 내내 한국을 대표하는 MC로, 아주 기막히게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 제자들에게 이경규 이야기를 자주 한다. 공부할 거면 제대로 하고, 놀 거면 제대로 놀라고. 그래야 뭐든 제대로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바로 이경규처럼. 그의 삶은 언제나 나에게 건강한 자극을 준다. 읽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이경규의 첫 에세이가 반가운 이유다.
_손주은(메가스터디 회장) -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이경규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b03b0e3ef7e4837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삶이라는 파도 위에서 코미디로 유영하는 45년 차 현역 코미디언 이경규의 첫 번째 에세이코미디가 아름다운 건 인생의 희노애락이 있기 때문이다나는 내 인생을 사랑한다 그래서 코미디도 사
www.millie.co.kr
새로운 것에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방송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있는 섬이라는 섬에는 전부 발도장을 찍었고, 지구도 세 바퀴는 돌았다. 잊지 못할 경험도 많았고, 잊지 못할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것이 다 나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가끔, 사는 것이 농담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도 아주 완벽한 농담. 어떤 일에 한없이 마음을 졸이다가도 지나고서 보면 허허 웃음이 나온다. 웃으면서 삶을 끝낼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인생을 무사히 농담으로 그려내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가 각자 인생의 희극 배우들이 아닌가 싶다.
별이 가져다준 공황
공황장애. 사람을 미치게 하는 병이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건 물론이고, 한번 나타나면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처음 이 병이 찾아온 날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서 호주 퍼스로 횡단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퍼스에서 시작하여 2주 가까이 2,000킬로미터의 아웃백과 오프로드를 달리는 로드트립이었다. 하루에 10시간씩 차를 몰았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끝없는 지평선이 이어졌고, 달리면서 간간이 로드킬당한 캥거루 시체, 어딘가로 이동하는 소떼들도 만났다. 호주는 지루할 만큼 넓었고 우리는 특별한 이벤트 없이 몇날며칠을 계속 달리기만 했다.
오프로드를 달리는데 가도 가도 까마득한 지평선은 계속 같은 자리에 있었다. 10일 동안 하루는 달리고, 하루는 텐트를 치고 쉬기를 반복했다. 밤 9시에 랜턴을 끄면 갑자기 딴 세상이 펼쳐졌다. 별들이 바로 눈앞으로 내려온 것처럼 생생했다. 은하수는 물론이고 별들이 폭죽처럼 터져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별세계였다.
“몇만 년 전의 별이래요.”
하늘을 뒤덮은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이내 온몸이 저리기 시작하더니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러다가 몸이 무너졌다. 겨우겨우 차에 올라탔지만 바로 쓰러졌다. 10일간의 긴장, 끝없는 운전, 그리고 우주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내 몸을 부숴버렸다. 스태프들이 사지를 마사지해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가 공황장애의 시작이었다.
긴장과 고독 사이에서
어느 프로그램에서 나더러 ‘No 논란 No 미담’이라고 했는데, 웃음이 나왔다. 그래, 맞는 말이다. 40년간 큰 실수가 없었던 건 그만큼 긴장을 놓지 않은 덕분이다. 편하게 방송한다고 핀잔도 듣지만 때로는 억울하다. 그건 순전히 예능에서의 내 캐릭터다. 카메라 앞에 선 뒤로는 단 하루도 마음을 놓은 적이 없다.
나는 고독을 낚시에서 배웠다. 춘천 소양호에서 낚시를 하며 이틀을 보냈다. 사람들은 묻는다. “이틀 동안 무슨 생각하세요?” 생각하지 않는다. ‘왜 고기가 안 물지?’ 그 생각뿐이다. 그래서 낚시가 좋은 것이다. 도시의 시끄러운 소음과 내 마음의 소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마지막 20년을 누워만 계셨다. 그런 아버지를 수발하신 어머니를 보면서 결심했다. 누군가에게 수발받는 삶은 선택하지 않겠다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다.
먹는 재미가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사느냐고 하지만, 잠깐 머무는 입의 즐거움이 나중에 얼마나 큰 고통으로 돌아올지 알고 있다. 4만 가지 병이 입으로 들어온다는데, 아직 건강한 몸이 이겨내고 있을 뿐이다.
건강은 빚과 같다. 젊을 때 막 끌어다 쓰면 나이 들어 이자까지 붙여 갚아야 한다. 나 역시 젊어서 현대 문명의 편리함을 마음껏 즐긴 대가를 100년 전 음식만 먹으며 혹독하게 치르는 중이다.
주위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을 꼽자면 대학 후배 최민식이 있다. 민식은 처음 만난 스무 살 그때부터 작품밖에 모른다. 부동산에도 관심 없고 오직 연기만 한다. 요즘은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며 운전도 직접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