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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ITSCASSIE1107 2025. 6. 2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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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몽은 뤽상부르 공원을 거닌다.

라몽은 탁자 위에 꽤 두꺼운 책이 한 권 놓인 것을 발견했 다. 그는 몸을 내밀어 책을 들여다보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 했다. "니키타 흐루쇼프의 『회고록』. 아니 이걸 왜?

p.24
침묵은 주의를 끌지.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어. 수수께끼같 이 알 수 없게 만들어 줘.

p.33
사람들은 살면서 서로 만 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다투고 그러지, 서로 다 른 시간의 지점에 놓인 전망대에서 저 멀리 서로에게 말을 건 네고 있다는 건 알지 못한 채 말이야." 잠시 가만히 있다가 샤를이 말했다. 시간은 흘러가. 시간 덕분에 우선 우리는 살아 있지. 비난받고, 심판받고 한다는 말 이야. 그다음 우리는 죽고, 우리를 알았던 이들과 더불어 몇 해 더 머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 죽은 사람들은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이 돼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 지 못하게 되고 완전히 무(l)로 사라져 버리는 거야.

p.42
러시아인들에게 그런 대단한 이름은 차고 넘쳐! 예카테리나 대제! 푸시킨! 차이콥스키! 톨스토이! 히틀러를 무찔러 그 시절에 사방으로 칭송을 받은 장군들의 이름들은 말하지도 않을게!!

✅ 푸시킨 (Александр Пушкин, Alexander Pushkin)

러시아를 대표하는 시인, 소설가, 극작가예요.
1799년에 태어나 1837년에 사망했어요.
현대 러시아 문어(문학적 표준어)의 기초를 만든 인물로 평가받고 있어요.
대표작으로는 서사시 예브게니 오네긴과 희곡 보리스 고두노프 등이 있어요.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후대 작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줬어요.
✅ 예카테리나 2세 (Catherine the Great, Екатерина Великая)

러시아 제국의 여제(1729~1796)로, 1762년부터 1796년까지 재위했어요.
독일계 출신이었지만 러시아 황태자(훗날 표트르 3세)와 결혼하면서 러시아로 왔고, 쿠데타로 남편을 폐위시키고 즉위했어요.
재위 기간 동안 러시아를 유럽 열강 수준의 강국으로 만들었고, 영토를 대폭 확장했어요.
계몽사상에 관심이 많아 국내 개혁을 시도했고, 예술과 문화를 크게 후원했어요. 그래서 ‘계몽전제군주’의 대표로 불리죠.

예카테리나 대제와 남편인 표트르 3세의 관계는 단순히 “사이가 안 좋았다” 수준을 넘어서, 당시 궁정 정치와 권력 다툼이 얽힌 복잡한 상황이었어요.

✔️ 왜 폐위했나?

표트르 3세는 즉위하자마자 여러 unpopular한(인기 없는) 정책을 펼쳤어요. 예를 들어 프로이센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면서 러시아 귀족과 군부의 불만을 샀고, 러시아 정교 대신 루터교를 선호해 종교계까지 적으로 돌렸어요.
예카테리나는 머리가 비상하고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서, 이런 상황에서 귀족, 군부, 교회 등 주요 세력의 지지를 이끌어냈어요.
결국 쿠데타를 일으켜 표트르 3세를 퇴위시키고 자신이 황제로 즉위했어요.
✔️ 이혼은?

공식적으로 이혼한 적은 없어요. 표트르 3세는 폐위 직후 유폐되었고, 곧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어요. 암살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어요.
둘의 결혼은 정치적 목적이 강했고, 사실상 결혼 생활은 파탄 상태였어요. 표트르는 예카테리나를 무시하고 공개적으로 정부를 두었고, 예카테리나도 여러 애인을 두었어요. 감정적으로도 완전히 결별 상태였다고 할 수 있어요.
즉, “이혼”으로 끝난 게 아니라, 권력을 잡기 위한 쿠데타로 남편을 폐위하고 스스로 황제가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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