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CASSIE1107 2025. 5. 20.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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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너에게는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 네 눈을 보면 알아.
지금 가지 않으면 영영 못 가. 직접 가서 그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모를 거야.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 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 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노든은 아내와 딸에 대해서는 항상 말을 아꼈다. 아내와 딸은 노든의 삶에서 가장 반짝이는 것이었고, 그 눈부신 반짝임에 대 해 노든은 차마 함부로 입을 떼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멀리 나아갈수록 치는 수척해져 갔다.
한낮에는 뜨거운 태양 빛 피할 데가 마땅치 않았고, 밤이 되면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 가며 알을 품어야 했다. 때맞춰 먹 이를 먹을 수 없는 것도, 건조해진 몸을 담글 물이 없는 것도 치쿠에게는 힘들었다. 오랜 시간 알이 든 양동이를 입에 물고 다니느라 부리도 점점 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치쿠는 알을 돌보는 일을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 다. 노든이 좀 더 쉬어 가자고 해도 치쿠는 고집스럽게 앞으로 나 아갔다. 곧 바다가 나타날 것이라는 확신이 치쿠를 최악의 상태 에서도 계속 걷게 만들었다. 치쿠는 기진맥진하여 휘청거리면서 도 지평선이 곧 파란색으로 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야속한 하늘은 그들이 걸어가는 길 위로 촉촉한 비 한 방울 뿌려주지않았다.

그날도 긴긴밤이 이어졌다. 노든과 치쿠는 뜬눈으로 밤을 지 새우고 있었다. 먼 곳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 있던 치쿠가 노든 에게 말했다.
"혹시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알을 돌봐 주겠다고 약속해
줘.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코뿔소라고. 알에 대해서는 아는 것 도 없을뿐더러 알을 품지도 못해. 그런 소리 할 여유가 있으면 조 금만 더 힘을 내"
"난 이제 너밖에 없잖아"
노든은 이런 얘기가 싫었다. 그래서 대충 대답해 버렸다.
"만약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알을 품어서 꼭 새끼 펭귄이 무사히 태어나게 하겠다고 약속해 줘"
"알겠어, 알겠다고.
"그 애를 바다에 데려다준다고도 약속해."
"알겠어, 알겠으니까 이제 이런 얘기는 그만하자." 오랜만에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노든은 치쿠와 처음 검은 길 위에서 보낸 밤이 떠올랐다.

반짝이는 별들과 연한 구름들이 보였다. 노든은 외로 웠다. 그래서 하늘을 계속 바라보았다. 오늘도 긴긴밤이 될 것이 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느라 노든은 알이 살짝 움직이는 것을 알 아채지 못했다. 조금씩 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작은 부리가 껍질을 깨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렇게 내가 태어났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노든에게 살아남는 법에 대해 배웠다. 노든 은 엄격했다. 알 바깥의 세상에서는 살기보다 죽기가 더 쉽다고 했다. 살아남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데도 내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치쿠와 윔보 때문이라고 했다.
"네가 어떤 기분일지 알아. 내가 그렇게 살아왔거든. 나는 항 상 남겨지는 쪽이었지. 내가 바보 같지만 않았어도, 용감하게 가족을 지킨 내 아내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노든은 아카시아나무가 많은 곳보다는 부드러운 풀과 잘 익은 열매가 많은 곳으로 갔으며, 독이 있어서 건드리면 안 되는 꽃과 열매를 알려 주고, 위험한 벌레나 동물을 만났을 때 똥을 뿌리고 도망가는 법도 알려 주었다. 그래서 나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본 적도 없는 치쿠와 윔보의 몫까지 살기 위 해 살아 냈다기보다는 나 스스로가 살고 싶어서 악착같이 살아 냈다. 그들의 몫까지 산다는 노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 은 그 후로도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의 일이다.

바다에 도착해야 한다는 노든의 말에 뒤이어 슬쩍 물 어보았다.
"바다에 도착하면 그다음은요?"
"그다음에는 다른 펭귄들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야지. 바다 에서는 바람보다도 빨리 달릴 수 있어서 먼 곳도 금방 갈 수 있 대.
"노든은 지금도 바람보다 빨리 달릴 수 있잖아요."
"글쎄, 그것도 옛날 얘기지. 이젠 다리가 아파서 바람보다 빨리 달릴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괜찮아요. 노든도 바다에 가면 다시 바람보다 빨리 달릴 수 있을 거예요.
노든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바다에 도착하면, 나는 더는 같이 갈 수 없어. 너 혼자 가야
돼."
"걱정 마세요. 혼자서도 잘 갈 수 있어요." 나는 그때, 헤어짐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단지 바다에 도착하 는 상상으로 들떠 있었다. 그래서 한껏 거들먹거리면서 자신 있 게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노든은 진심으로 대견스러워했 다.
"치쿠와 웜보가 자랑스러워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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