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단어 자존
돈오점수, 돈오, 갑작스럽게 깨닫고 그 깨달은 바를 점수, 점차적으로 수행해가다 라은 뜻입니다.
행복한 삶의 기초가 되는 것은 자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 이게 있으면 어떤 상황에 처해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자존, 스스로 자에 중할 존이죠. 나를 중히 여기는 것. 이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합니다. 지 금부터 그 차이를 입증해보겠습니다.
지금처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전에 살던 집 근처에 있는 황가네 호떡집의 사장님이 생각납니다. 한 개에 5백 원, 2천 원에 다섯 개 주는데 아주 맛있어요. 이곳 사장님의 표정은 언제나 예외 없이 정말 좋았습니다. 자기 일을 정말 좋아서 열심히 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서 오세요!"라 는 이 첫마디부터 활기가 넘쳤죠. 손님이 많든 적든 늘 한 결같이 말입니다. 저는 그 얼굴이 좋았습니다. 추운 겨울에 호떡을 구우면서 그런 표정 짓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 사장님은 자기 일에 만족하는 게 보였습니다. 나, 지금 나의 위치, 내가 하고 있는 일, 여기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표정이 다른데 그 사장님 표정이 딱 그랬습니다. 그래서 호 떡을 살 때마다 이 집 사장님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 각했죠.
자존을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웬 호떡집 사장님 이야기냐
고요? 그 이유는 자존이 있는 사람은 풀빵을 구워도 행복
하고, 자존이 없는 사람은 백 억을 벌어도 자살할 수 있다 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매우 극단적인 비교지만 사실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의미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사 람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결말은 정반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이라고 그 상자가 없을까요? 아니죠. 우리는 아직도 각자의 상자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십 대가 살아야 할 상 자, 삼십 대가 살아야 할 상자, 사십 대가 살아야 할 상자.
그 상자의 바깥으로 벗어나면 매년 명절마다 고문을 당하 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측은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패한 인생이라고 손가락질 받죠.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현 실에서 자존을 싹 틔우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미국 이야기가 나온 김에 미국과 한국 두 나라에서 교육 받은 분의 경험을 들어봅시다. 얼마 전 한 신문사 칼럼을 쓰기 위해 세계적인 설치미술작가 서도호 씨를 인터뷰했어 요. 여러 문답이 오갔는데, 그중 창의성의 관점에서 한국과 미국의 두 문화를 비교해보면 어떻느냐고 물었어요. 서도 호 씨는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결국 그는 미국 교육은 '네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궁금해한다면 한국 교육은 '네 안에 무엇을 넣어야 할 것 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했습니다.
내 마음속의 점들을 연결하면 별이 된다
정신과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모든 사람은 완벽하게 불 완전하다"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어요.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총수, 최고 대학의 총장, 대통령까지 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불완전해요. 다만 그들의 직책이나 직위 때문에 완벽해 보일 뿐이죠. 그들은 완전한 면만 부각이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완전한 면만 두 드러져 보이기 때문에 차이가 나 보이는 것뿐입니다. 누구 나 단점은 많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살아남은 유기체들인데 어떻게 단점만 있겠습니까? 분명 히 장점도 있죠. 그러니 내가 가진 장점을 보고 인정해줘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는 여기서부터 이전과 다른 인생을 살 기 시작하는 겁니다. '촌놈'이라는 것은 자기 안을 들여다 봤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논문의 주제를 바꾸고 신이 난 그는 공부가 재미있어서 10년 동안 도시락 을 두 개씩 싸 가지고 다니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1995년에 주제를 바꾼 논문은 1999년 8월에 마침내 완성됐고, 그는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의 인생은 쉽게 풀렸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공부하는 동안 빚은 쌓였고 대 학교수 자리를 얻는 것도 요원했죠. 중 • 고등학교 교사 자 리도 쉽게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박사 학위를 받고도 일을 구하지 못한 그는 일 년간 팔공산을 오르며 소설을 쓸까 시
를 쓸까 별별 궁리를 다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서 『신갈나무 투쟁기』라는 책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전공과 취업에 아무 상관 없이 우연히 펼친 책인데 재미있었대요. 그런데 '나무라면 나도'라는 생 각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계명대학교 안에 있 는 나무부터 공부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나무 도감을 가지 고 다니면서 나무 하나하나를 비교하고, 조경을 담당하는 행정직원에게 정보를 얻으면서 계명대의 나무를 다 세고 기록을 합니다. 그리고 나무를 공부한 사학자는 인문적인 나무 이야기 『나무열전』과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 랑한 나무』 등을 집필하죠.
강판권 씨는 자기 안의 점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밖에 찍어놓았던 기준점을 모두 안으로 돌려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냈고 점을 다시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의 점들을 연결해 하나의 별을 만들어낸 겁니다. 강판권 씨는 지금 계명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만약 이 사람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현대고등학교
를 나오고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농촌에 주목할 수 있었을까요? 나무를 잘 알 수 있었을까요? 현대고, 서울대 를 나와서 가기에는 힘든 길이죠. 그러나 그들이 가기 어려 운 길을 강판권 씨는 가고 있어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걸 봤기 때문이고 자기 길을 무시하지 않은 겁니다.
자신의 길을 무시하지 않는 것, 바로 이게 인생입니다. 그 리고 모든 인생마다 기회는 달라요. 왜냐하면 내가 어디에 태어날지, 어떤 환경에서 자랄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다른 자신의 인생이 있어요. 그러니 기회도 다르겠죠. 그러
니까 아모르 파티, 자기 인생을 사랑해야 하는 겁니다. 인 생에 정석과 같은 교과서는 없습니다. 열심히 살다 보면 인 생에 어떤 점들이 뿌려질 것이고, 의미 없어 보이던 그 점 들이 어느 순간 연결돼서 별이 되는 거예요. 정해진 빛을
따르려 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오직 각자의 점과 각자의 별 이 있을 뿐입니다.
강판권 씨를 보세요. 자기 자존을 놓지 않고,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봤어요. 그리고 그걸 놓치지 않았죠. 자신의 별을 만들었어요. 그가 지난한 삶과 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은 자존이었다고 생 각해요.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합니다. 그래야 답 이 나오죠. 나는 관심도 없고 잘 하지도 못하는데 남들이 다 하니까 기준점을 그쪽에 찍어놓고 산다면 절대로 답이
나오지 않을 겁니다.
이순신은 물살의 방향을 보고 그것을 이용해 한산대첩 에서 승리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이순신의 물살이 나 타날까요? 인생은 똑같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시간에 하고 싶은 말이 다 담겨 있습니다. 자기 기준점을 잡고 살자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죠.
땅끝마을 해남에는 신라시대에 세워진 절이 하나 있습
니다. 대흥사입니다. 그 절의 북원 출입문으로 대웅전 맞은 편에 자리한 침계루(#t꽃*)의 기둥들은 기둥뿌리의 지름을
기둥머리의 지름보다 크게 만드는 민흘림 기법을 쓰지 않
고 휘면 흰 대로 나뭇가지 부분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각각 의 모습을 살려서 지었습니다. 직접 가서 보면 정말 멋집니 다. 나무 그대로의 모습으로 1500년의 세월을 지낸 기둥을 보고 있자면 여러 생각이 겹칩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이 나무 기둥과 같은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깎고 다듬어 져 전부 똑같은 모양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닌, 생긴 모 습 그대로 각자의 삶을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시공을 넘어 대흥사와 똑같은 메시지를 주지만 현대에 만들어진 또 다른 예가 하나 있습니다. 브리트니 스 피어스의 노래 가사인데요. 대흥사의 기둥과 브리트니 스 피어스 목소리는 시대도 전달 방법도 다르지만 같은 이야 기를 하고 있습니다. 들어보실까요?